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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 이도현, 더없이 로맨틱한 망나니 칼춤
작성자 : 관리자 2023.03.14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남자 주인공 주여정(이도현)은 무결한 남자다. 대형 병원장 아들이자 그 역시 의사이고, 심지어 성정은 바르고 외모는 훤칠하다. 하지만 이 완벽함은 과거다. 눈 앞에서 피를 쏟으며 죽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그 일을 겪기 전까지 그는 무결한 남자였다. 범죄자일지라도 살리고자 했던 사명감을 높은 의사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신 역시 그렇게 되리라 믿었을 남자. 하지만 자신의 발밑까지 닿은 아버지의 시뻘건 피가 그를 변화시켰다. 그렇게 무구했던 남자는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살인마에게 분노하며 때때로 그를 죽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그는 무력하다. 정신 나간 살인마가 보내오는 편지는 그에게 더욱 커다란 상실감과 자괴감, 복수심을 안긴다. 때문에 마음에 품은 여자가 "왕자가 아닌 칼춤 춰줄 망나니가 필요"하다고 하자 반색한다. 여기에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지는 사랑하는 여자의 짙은 흉터를 목격한 그는 "할게요 망나니. 그것들 중 누구부터 죽여줄까요?"라며 로맨틱한 칼춤의 순간을 장식한다. 

 

조각 같은 외모에 단정함을 지닌 남자. 동시에 걱정어린 시선으로 뒤돌아보게 되는 남자. 물론 90년대식 백마 탄 왕자님과 달리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건 최근 10여년간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정경호)이 그러했고, 현재 방영 중인 SBS '모범택시2'의 김도기(이제훈) 역시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사적 복수에 눈을 뜬 주인공이다. 결핍의 가녀림이 새로운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최근의 작품들은, 남자 주인공의 위태로움에 동정의 여지를 불어넣어 측은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정은 이러한 결핍을 최대한 숨기고 남들에게 표내지 않는다. 때문에 동은(송혜교)을 보호하고자 "더 나은 사람"이라고 했던 말에 "좋겠어요, 선배는. 초콜릿 상자 같은 유년이었을 거고 구김 하나 없는 좋은 어른으로 커서. 그렇게 입바른 소리만 해도 세상 살 만해서"라는 야유를 듣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여정은 완벽한 모습과 불안정한 모습을 병립하기보다는, 불안정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완벽한 형태를 갖춘다. 그가 완벽해 보이는 동시에 안쓰러워 보이는 건 그래서다.

 

Z세대 배우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이도현의 조각상 같은 외모가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아슬아슬한 감정선의 줄타기를 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이해의 여지는 더 넓어진다. 잘생긴 얼굴을 이용하기보다는 불안을 억제하며 발산하는 눅진한 긴장감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불안이 자리했던 '멜랑꼴리아'의 승유, 아버지의 강압에 숨죽여 울었던 '오월의 청춘' 희태, 상처 받을수록 날을 세웠던 '스위트홈'의 은혁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상처가 쓰릴수록 로맨틱한 얼굴을 피어냈다. 

 

'더 글로리' 마지막화에서 말도 없이 떠났던 동은이 돌아오자 "뭐 이런 나쁜"이라는 말과 함께 차마 문장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던 여정처럼, 이도현의 로맨스 연기는 햇살 아래 감미로운 미소를 지어보일 때가 아니라 설움과 아픔이 치유되는 찰나의 아이 같은 표정에서 완성된다. 모성애를 자극함과 동시에, 이성적인 호감까지 연결되는 다층적인 얼굴. '더 글로리'와 여정으로 피어낸 이도현의 담금질은 차원을 넓힌 로맨티시스트의 진일보다. 

 

한수진 기자​